오징어 게임의 흥행은 관련 문화와 산업으로도 파급되고 있다. 지난주 핼로윈데이 복장은 단연 오징어 게임 캐릭터 분장이 압도했다. 미국 뉴욕, 호주 시드니 등 세계 곳곳에서는 오징어 게임 체험이 열리고 있다. 이미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트레이닝복, 달고나 세트 등 오징어 게임의 상징적 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급기야 오징어 게임의 인기에 편승한 암호화폐(가상화폐) '스퀴드 게임'까지 등장했다. 정체가 불분명한 이 암호화폐는 하룻새 2400% 폭등했지만 개발자가 코인을 모두 현금화하고 도주해 100% 폭락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구슬치기', '줄다리기', '오징어' 등 친근한 추억속 게임이 잔혹한 서바이벌로 치환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임에 참가한 루저들의 데스게임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실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고와 사업 실패로 대리기사와 경마장을 전전하다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주인공 성기훈(이정재)은 우리 사회의 계층 사다리의 끝자락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북한에 있는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게임에 참가한 강새벽(정호연)은 탈북민 문제를 건드린다. 그 외에도 드라마는 게임 참가자 면면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현실, 엘리트주의의 양면성을 꼬집는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합류한 참가자들의 생존게임은 실패하면 가차없이 죽는 냉혹한 현실세계와 묘하게 닮아 있다. 뉴욕타임스는 "'흙수저' 청년들과 소외 계층, 집값 폭등과 경제적 양극화에 따른 불안감 확대 등 한국 사회의 우울한 자화상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지구촌의 많은 나라가 직면한 현실과도 교차한다.
현실을 들춰보자.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 환경은 어린 학생들을 무한경쟁의 세계로 안내한다. 한 문제만 틀려도 내신등급이 뚝뚝 떨어지는 상황에서 우리 자녀들은 성인이 되기도 전에 경쟁에서 밀리면 도태된다는 씁쓸한 교훈을 얻게 된다. 간신히 대학 문턱을 넘으면 취업이라는 바늘구멍에 맞닥뜨린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9월 현재 청년(15~29세) 고용률은 45.3%로 둘 중 한 명 이상은 일자리가 없다. 치솟는 집값에 내집 마련은 언감생심이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정년까지 살아남는 직장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은퇴후 시작한 자영업은 자리잡기에도 버겁다.
냉혹한 현실은 곳곳에서 극단적 갈등으로 표출된다. 빈부, 세대, 젠더 갈등에서 노사와 노노 갈등까지 그 양상도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갈등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정치권은 되레 갈등 유발자가 된 지 오래다. 이념과 이해득실에 따른 편가르기가 일상화된 탓이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갈등지수는 55.1포인트로 멕시코(69), 이스라엘(56.5)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반면 갈등 조정과 해결과 관련된 갈등조정지수는 27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오징어 게임은 이런 현실을 잠시 뒤돌아보는 계기를 준다. 오징어 게임을 만든 황동혁 감독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우린 매일 경쟁에 내몰리지만 이걸 누가 설계해놓고 모두를 싸우게 만드는지, 때로는 자각을 해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은 서바이벌이 아니라 이타심에 대한 이야기"라는 이정재의 말은 울림이 있다. 그래서일까.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현실 속에서 오징어 게임 설계자 오일남(오영수)의 외침은 곱씹게 된다. "이러다 다 죽어!"
[김동선 뉴스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