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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역사학자 알랭 루시오(Alain Ruscio) 교수는 베트남과 호찌민 주석, 그리고 인도차이나를 비롯한 전 세계 식민주의 역사를 40년 이상 연구해 온 인물로, 1945년 가을 8월 혁명의 승리는 역사적 필연이라고 강조했다. 루시오 교수는 베트남 국민이 베트남 독립동맹회(베트민‧Việt Minh)와 호찌민 주석의 영도 아래 기회를 포착하여 프랑스 식민지배를 받던 전 세계 민족들 중 가장 먼저 독립 투쟁에 성공하던 민족 중 하나가 되었다고 밝혔다. 교수에 따르면 이는 비범한 성과라며, 이러한 성공은 무엇보다 수천 년에 걸친 베트남 민족의 건국 및 국방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루시오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식민주의자들이 내세운 논리 중 하나는 ‘그 민족과 국가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정복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논리는 베트남에 전혀 적용될 수 없습니다. 베트남에는 심지어 프랑스의 중앙집권적 국가 모델이 등장하기 전부터 국가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에 주재했던 수많은 프랑스인들이 식민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베트남인들의 저항에서 강력한 민족주의 사상이 발현되었음을 인정했습니다. 만약 이러한 강력한 애국주의가 없었다면, 베트남인들의 저항이 그토록 오래 지속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편, 프랑스 외교 정책 및 베트남에서 치러진 전쟁 전문 연구자인 피에르 주르누(Pierre Journoud) 역사학자 또한 8월 혁명의 성공은 호찌민 주석의 결정적인 역할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호찌민 주석이 베트남 애국 운동의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집약시킨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호찌민 주석의 위대함은 단순히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프랑스 국민까지 설득할 수 있는 탁월한 협상가이자 조직가로서의 자질에서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자질 덕분에 베트남 국민의 민족 독립 투쟁은 그 정당성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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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저명한 베트남 전문가이자 베트남-일본 대학 총장을 역임한 후루타 모토오(古田元夫) 교수는 8월 혁명의 정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혔다.
“제 생각에 8월 혁명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적절한 시기라는 점입니다. 둘째, 대중의 힘을 결집했다는 점입니다. 셋째, 전국적인 규모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이 세 가지 특징은 베트남민주공화국이 나아갈 길에 강력한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8월 혁명에서 시작된 정부가 오늘날까지 존속하며 강성해진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노르웨이 역사학자 스테인 퇴네손(Stein Tønnesson)은 다른 시각에서 8월 혁명을 연구하며,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 독립동맹회(베트민)가 발행한 ≪베트남 독립(Việt Nam Độc lập)≫ 신문 총 122호를 수년간 수집했다. 노르웨이 역사학자는 이를 호찌민 주석과 베트민의 탁월한 언론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퇴네손 교수는 이 신문들의 선전 구호가 간결하면서도 오랫동안 해방을 염원했던 민족에게 위대한 호소력을 지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