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3/2020 09:53 GMT+7 Email Print Like 0

칸 리 (Khánh Ly)명가 – 노래를 부르는 한 세상, 돌아갈 곳

해외 가수들 사이에서는 칸 리 (Khánh Ly)가 이정표이다. 60여 년간 가수로 활동한 그녀는 연민에 물들지 않고 흔적을 남겼다. 수많은 사람들은 수백 곡의 노래를  마음으로 들려주면서 국내외 청중들에게 고향에 대한 사랑, 부부애, 찐공선(Trịnh Công Sơn)의 노래를 불안감 속 동정심을 일으켜주던 열정적이었던 칸 리 (Khánh Ly)를 잊지 않을 것이다. 
많은  찐공선(Trịnh Công Sơn) 애호가들처럼 나는 칸 리를 사랑했다. 학교 의자에 앉았을 때부터 말이다. “ 반세기가 넘게 노래를 불렀지만 음표를 하나도 모른다 ”라고 공인한 가수의 나지막한 알토 (Alto)  목소리는 남성적으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찐공선 음악 애호가들에게 중독성을 준다. 

뛰어난 작곡가 찐공선의 철학과 풍부한 시적 가사를 하나하나 소화해 내는 등 칸 리 (Khánh Ly)의 독특한 목소리는 너무 큰 감성을 자아내어 때로는 소름 끼치는  매혹적인 성조,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칸 리 는 자연스럽게 눈에 거슬리지 않지만 부드럽되 부드럽지 않는 스타일로 
(Trịnh)의 음악을 노래하고 승화했다. 그녀는 노래꾼처럼, 이야기꾼처럼 자연스럽게 노래를 불렀지만, 그의 매혹적이고 매혹적인 목소리에 항 청중들은 금방 사로잡혔다.


찐공선 음악가의 노래를 부르는 칸 리 명가사진:탄화(Thanh Hòa)


칸 리 명가이 2019년 10월에 다낭에서 남자 가수 안코아(Anh Khoa)과 함께 공연하고 있다사진:탄화(Thanh Hòa)


칸 리 명가가 2019년10월에 다낭(Đà Nẵng)에서 남자 가수 Elvis Phương와 함께 공연하고 있다사진:탄화(Thanh Hòa)


미국의 젊은 가수 쿄 요크가 처음으로 우상과 함께 노래하게 되어 행복해 하고 있다. 사진:탄화(Thanh Hòa)


칸 리 명가가 2019년10월에 다낭에서 열리는 ‘The Best of Khánh Ly-  감사’의 밤'에 공연을 준비하며 연습하고 있다.
사진:탄화(Thanh Hòa)


2019년10월에 다낭에서 열리는 ‘The Best of Khánh Ly–  감사’의 밤'에서 칸 리  명가와 야간 콘서트에서의 연예인들.
사진:탄화(Thanh Hòa)


칸 리 명가가 다낭 대중들의 애도에 앞서 공연을 하고있다.
사진:탄화(Thanh Hòa)

찐공선의 시적 풍성함과 철학적 감각에 흠뻑 젖은 노래들은 칸 리의 자애로운 음성으로 혼을 불러일으켜 열정적인 커플의 사랑 이야기, 삶의 경험뿐만 아니라 고향, 나라에 대한 애정까지 청중들을 휘어잡는다...

최근 칸 리 명가는 베트남으로 돌아와 국내 동포들을 위한 대규모 공연을 개최하고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국내 공연을 위해 해외 유명 아티스트들을 위한 대규모 예술 프로그램들을 기획하여 꽝탄(Quang Thành) 가수의 후원을 받으며 그녀는 전국 여러 도시에서 고아와 독거노인들을 돕는 자선 음악 공연인 '인애 팔찌' 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찐공선 음악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반드시 칸 리 에 대해 언급해야한다. “ 선까 7(Sơn Ca 7)”, “까쿡자방(Ca khúc da vàng)”, “느칸박바이(Như cánh vạc bay)”, “꺼섯사즈아(Cỏ xót xa đưa)”, “하장(Hạ trắng)” 등을 언급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수천 개의 언론기사, 칸 리와 관련된 수십 권의 책, 그리고 음악가  찐공선과 함께한 그녀의 삶에 대한 기록도 어마어마하다. 또한 할머니와 그 유명한 음악가 앙카라를 둘러싼 수 많은 아름다운 일화들도 이젠 아마 그 시대의 사람들만이 기억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칸 리 의 인생은 숨과 생명과 같은 맹공산의 음악과 함께했다. 그것은 마치 운명처럼, 마치 칸 리가  찐공선 노래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오히려 이 세상에 있는  찐공선은 칸 리를 위해 바쳐진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칸 리 는  찐공선에게 감사한 마음을 많이 느끼고 있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아왔다고 여러 번 털어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칸 리 –  찐공선은 하늘이 이어준 한 쌍이라고 비유했다. 미국의 전설적인 예술가 밥 딜런과 조안 베이즈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서로를 위해 태어난 것이다.

75년의 인생 중에거의 60년에 가까운 세월을 노래하면서,칸 리는 인생과 경력에 있어서 많은 희로애락을 경험하기도 했다. 1975년 이후 그녀는 고향을 떠나 가족들을 따라 미국에 정착했다. 이렇게 조국을 떠난 것은 시대상 다양한 이유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약속도 없이' 떠나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칸 리도 결국 조국으로 돌아왔다. 조금 늦었지만 2014년 하노이 첫 공연 당일 밤 수천 명의 국내 관객들과 잊지 못할 만남으로 보답 받았다. 즉 고향 베트남을 떠난지 거의 40년 후에 칸 리는 이때를 시작으로 베트남에 여러 번 돌아왔고 그녀는 매번 돌아올 때마다관객들의 사랑과 고향의 환영을 느꼈었다.

칸 리는 그녀가 말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돌아왔다. 그녀는'낙엽' 이고, 고향은 '돌아올 곳' 이다. (누구나 결국 자신을 낳아준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고향을 떠난 지 몇 년 후, 칸 리 는 고향 땅에서 노래하고 사랑의 봉사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나누기 위해 기쁨과 함께 돌아왔다. 


칸 리 명가가 다낭 성당을 방문하고 있는 모습사진:탄화(Thanh Hòa)


칸 리 명가가 일요일 다낭 성당에서 예볘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탄화(Thanh Hòa)


칸 리 명가는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관객들과 교류한다.
사진:탄화(Thanh Hòa)


칸 리 명가가 다낭의 광저우 사원에서 보살핌과 양육을 받는 고아들을 방문하였다.
사진:탄화(Thanh Hòa)

고향은 이제 새롭게 바뀌었고,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항상 두팔을 벌려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자녀들을 환영한다. 지난 몇 년간, 많은 교포들이 고향으로 돌아왔고, 팜쥐(Phạm Duy),체링(Chế Linh), 엘비스프엉(Elvis Phương), 흐엉란(Hương Lan) 등과 같은 수 많은 유명 해외 예술가들도 돌아왔다. 고향에서 하루하루 일어나고 있는 신선한 변화들을 느끼고, 자신의 노래로 고국을 위해 단 한 번이라도 기여하기를 바라며 돌아왔다.

다낭에서 열린 공연 "The Best of Khánh Ly - 감사의 밤"에서 다시 만난 이날 밤, 관객들은 수 많은 경험들을 쌓은 가수로써의 칸 리 뿐만 아니라 한 유년기에 떠난 후 고향을 돌아와 해맑고 행복해하며 해변을 찾아 온 환한 미소를 지닌 칸 리를 볼 수 있었다./.

“고향에 대해 항사 감사해하고, 친지, 친구들에게 감사해하고, 청중들과독거노인과 어린이들에게도 감사해하고 …,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해하며, 이 인생이 끝날 때까지 노래하하겠다. ”
 
(칸 리 명가가 마음을 터 놓았다)
 
기자:탄화(Thanh Hò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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