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2/2021 09:01 GMT+7 Email Print Like 0

아오자이를 통해 베트남의 특색을 감상하다

수천년의 역사 및 시기의 변화를 지나서 패션유행을 계속 변화됐는데 베트남의 전통의상 아오자이(áo dài)는 그대로 우아하고 자랑스럽게 보존돼 있다. 아오자이는 시기변화의 흔적을 표하고 베트남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국제친구에게 특별한 감정을 표현 한 것이다. 
아오자이에 관한 역사적인 이야기들 

아오자이의 정확한 근원을 확실할 수 없지만 역사적인 배경을 따라 역사전문가들은 일치한 의견을 공개되는데 기원 초 시기에 존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첫 아오자이를 입게 된 분은 바로 베트남 하이바쯩(Hai Bà Trưng, 40 - 43)이라는 최초의 여장군 두 분이다. 전설에 따르면 하이바쯩(Hai Bà Trưng)여장군 자매는 앞과 뒤로 2개의 다른 단판으로 노란 갑옷을 입고 코끼리를 타면서 적군을 쫓아냈다. 그 후에 존경하는 마음을 표하기 위해 베트남 여성은 앞과 뒤로 2개의 다른 제단판으로 된 의상을 입지 않고 4제 단판으로 된 의상을 입기 시작하였다. 

역사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4제 단판으로 된 아오자이는 시간이 지나며 많은 영향을 받고 변화됐다. 17세시~19세기 사이에는 더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보이기 위해 도시 여성들은 자신의 부유함과 사회직위를 표현 된 아오자이 디자인으로 개량했다. 





호치민시 9군 용프억(Long Phước) 용투언(Long Thuận) 306번지에 위치한
베트남 아오자이 박물관에 전시된 여러 시대를 지난 베트남의 아오자이 디자인들.
사진: 통하이(Thông Hải)




아오자이는 베트남 까쭈(Ca trù) 가창 출연자의 공연의상이기도 하다.
2009년 1월 까쭈 가창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진: 덧썬(Tất Sơn)




푸토(Phú Thọ)성 쏘안(hát xoan)가창 출연자의 공연의상도 아오자이이다.
쏘안 가창도 음악, 노래, 춤, 의상 등 다양한 예술적인 의식과 민요이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진: 덧썬(Tất Sơn)

 
1930년대 초 서양문화가 베트남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며 베트남 시민들의 취향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아오자이에 대한 심미적인 개념도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에 깟뜨엉(Cát Tườn)이라는 화가가 Lemur(그녀의 불어 이름)이라는 아오자이 디자인을 공개했는데 이 아오자이 디자인은 부팡 슬리브, 목 부분을 깊이 파는 등 서양식 재단 방식으로 만들었다. 

아오자이( Áo dài,ˈaʊ ˌdʌɪ))는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베트남여성의 전통의상이자 양 앞과 뒤 단에서 허리까지의 깊은 슬릿이 있는 긴 옷과 헐렁한 바지가 있는 디자인의 의복이다.  
Lemur 아오자이는 몇 년간 유행 됐는데 다양한 의견이 있어 레포(Lê Phổ )라는 회가가 파격적인 서양문화가 영향을 미친 부분을 개량했다. 본래 전통적인 디자인과 어울리게 하면서 목 부분이 더 보이지 않게 하고 몸을 더 붙이고 양 앞과 뒤 단에서 더 날렵하게 됐다. 

현재까지 베트남 아오자이는 자세한 부분에도 여러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예전에 아오자이의 양 앞과 뒤쪽 4 단이 있는 디자인은 양가 가족의 부모라는 의미가 있었다. 옷 왼쪽 가습부분 옆에 단추 5개가 옷의 선을 유지하는 효과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야 성격 다섯 가지를 표현한 것이다. 


짜익 사(Trạch Xá), 아오자이 맞춘 전문적인 마을 

현재 하노이 응화(Ứng Hoà)현 자익사(Trạch Xá)마을도 아직까지 베트남 아오자이 제작 공예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하노이 중심과 약 60km 정도 떨어져 있는 이 마을은 1,000 년 이상 아오자이를 제작해왔다. 

연말이 되어 베트남 북-중-남 등 지역에서 많은 주문을 받아서 아오자이를 바쁘게 재단하고 있는 시기에 자익사 마을에 찾아왔다. 이 마을의 70%의 가구들은 전통 아오자이 제작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마을의 규칙은 젊은이들이 어떤 전공을 선택하든 나가기 전에 의상 재단 기술을 배워야만 한다. 

의상 재단은 단순히 옷을 만든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익사 마을에서 마을의 의상재단비법에는 그밖에 뜻도 있다. 그래서 배운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투자해 고생하여 배워야 한다. 



1000년 이상 자익사(Trạch Xá)마을에서 수많은 솜씨가 좋은 의상재단 공예작가를 교육시켜 왔다.
솜씨가 좋고 마을의 공예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베트남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 전통 아오자이를 재단해 왔다.
사진: 공닷(Công Đạt)




자익사 마을에서 6~7살 정도 된 아이들은 집에서 간단한 재단 기술을 배우고 15~16살이 되면
완전히 성숙하게 재단할 수 있어서 전통 아오자이를 스스로 완성할 수 있다.
사진: 공닷(Công Đạt)




응웬반니엔(Nguyễn Văn Nhiên, 86세)할아버지는 자익사 마을에서 아오자이를 70년간 만들어 왔다.
사진: 공닷(Công Đạt)

 

북부지역의 오래된 건축방식으로 지어진 집안에서 응웬반니엔(Nguyễn Văn Nhiên, 86세)할아버지는 아오자이 재단 70년 경험을 근거로 마을의 이 전통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이 이야기는 여러 시대를 걸쳐 마을의 전설이 됐다.
여러 시대를 걸치고 국내외 여러 패선유행의 영향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변화하며 아오자이 재단의 천부터 재단기술 작은 부분까지 여러 가지를 정화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968년 12개의 정파가 진압된 이후 딩띠엔황(Đinh Tiên Hoàng)왕은 썬떠이(Sơn Tây)라는 지역에 찾아와 현자와 장군들를 모집하였는데 거기에서 응웬티쌘(Nguyễn Thị Sen)이라는 연인을 만나게 됐다. 15살이 된 그녀는 아주 예쁘고 열심히 재단과 자수를 잘 만들어서 딩띠엔황 왕의 후비가 됐다. 솜씨가 좋고 똑똑했던 그녀는 왕국에서의 재단기술을 개발했다. 979년 딩 왕조는 문제가 생겨, 그 후에 그녀는 화르(Hoa Lư)수도에서 자신의 고향인 자익사(Trạch Xá)마을로 자식들을 데리고 돌아와 마을 주민에게 재단기술을 가르쳤다.  

현재, 조상의 제삿날에 베트남 북-중-남 전국에서 자익사 마을로 모여 제사를 지낸다. 그래서 그런지 자익사 마을의 아오자이 재단은 끊임없이 발전되었고 전국 여러지방으로 퍼졌다. 자익사 마을의 아오자이는 베트남 대도시 손님을 뿐만 아니라 호주, 미국, 태국, 스웨덴 등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현대생활 및 국제패션계에서의 아오자이의 존재  

베트남의 혼과 베트남사람의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 아오자이는 항상 특별한 날이나 국가적인 행사에 주로 입는 의상이자 일상생활상 여러 분야에서 감흥의 원천이기도 하다. 

아오자이의 수도로 불리우는 후에(Huế)시에는 여고생 및 여대생들의 일상생활 의상이다. 또한 매주 월요일이 되면 회사원도 아오자이를 입고 회사를 다닌다. 
아오자이는 21세기의 능동적인 전통의상으로 평가받았다. 현제 아오자이는 개인화로 돼서 각자의 특색을 잘 표현한다. 이 요소도 현재 세계패션의 유행이다. 그래서 현재 베트남 아오자이는 세계패션 시장에도 인정을 받고 있다. 아오자이 이미지는 아오자이로 감흥을 얻어 디자인 된 Giorgio Armani, Ralph Lauren, Calvin Klein 등의 컬렉션을 통해 파리, 뉴욕, 미란, 스페인 등 세계패션 중심지까지 퍼졌다. 



하노이 보행자거리에서 아오자이 축제의 아오자이 패션쇼
사진: 타잉지앙(Thanh Giang)
 



후에(Huế)시에서 아오자이는 여고생 및 여대생의 일상생활의 의상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 응웬루언(Nguyễn Luân)




후에시 공무원은 매주 월요일에 아오자이를 입고 회사에 다닌다.
사진: 자료사진




아오자이는 하노이사람의 약혼식 및 결혼식 의상이다.
사진: 타잉지앙(Thanh Giang)




하노이 문묘-국감자에서 열린 패션쇼에 Chula 디자이너의 튤립 컬렉션 아오자이를 입고
무대에 서있는 Cecilia Piccioi 주베트남 이탈리아 대사(빨간 의상)의 모습
사진: 타잉지앙(Thanh Giang)




하노이 문묘-국감자에서 열린 아오자이 패션쇼에 선 보이 유명한 디자이너들의 아오자이 컬렉션
사진: 타잉지앙(Thanh Giang)




2014년 후에 축제 때 선보인 아오자이 패션쇼
사진: 타잉지앙(Thanh Giang)

 

아오자이는 세계통합을 향한 베트남의 변화를 표현하며 시기변화와 적응할 수 있게 계속 변화되면서도 자신만의 기본적인 가치를 그대로 유지한다. 

여러 시대를 걸치고 국내외 여러 패선유행의 영향을 미치며 자연스럽게 개량됐는데 아오자이 재단 천부터 재단기술 작은 부분까지 여러 가지가 정화됐다. 변화되지 않는 아오자이의 가치는 철학성과 예술성뿐만 아니라 베트남 문화와 혼을 보존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아오자이를 입는 분들은 비인격적인 행동을 할 수 없게 느끼게 될 것이다. 이는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아직 특별하고 귀한 가치이다. 아오자이는 베트남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상징이고 베트남 민족의 자랑스러움이기도 한다./.

베트남에는 등재된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이 13 가지가 있다. 그중에 박닌 관호 민요, 까쭈 가창, 푸토성 쏘안 가창, 응에-띤의 비와 잠 민요, 냐냑 궁전 음악, 베트남 남부 지방의 ‘던 까 따이 뜨’ 음악과 가창 예술, 세 영역을 관장하는 모신(母神)을 섬기는 비엣 족의 신앙과 풍습 등 7가지의 무형문화유산의 무대의상은 아오자이인데 세계에 아오자이처럼 이렇게 수만은 문화유산과 관련이 있고 인류문화유산에 빛내준 것은 유일한 의상일 것이다.
기사: 타오비(Thảo Vy)
사진: 공닷(Công Đạt), 통하이(Thông Hải), 타잉지앙(Thanh Giang),
응웬루언(Nguyễn Luân) 및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