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서시(Chuck Searcy)- 베트남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베트남에 속하기 위해 머무르다.

척 서시(Chuck Searcy)- 베트남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베트남에 속하기 위해 머무르다.

오랜 세월 동안 하노이 하호이 골목 주민들에게 척 서시의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그는 소박하고 조용하게 살아가며 일상 속에서 이웃들과 가까이 어울리는 미국인 참전군인이다.바쁜 일과를 마친 뒤, 그는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며 단골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음미하곤 한다. 이는 하노이의 일상적인 리듬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삶의 일부다.

30여 년 넘게 베트남과 인연을 이어온 척 서시(Chuck Searcy)는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선택했다. 사진은 2026년 4월 촬영된 척 서시의 초상. 사진:꽁닷(Công Đạt)/베트남 픽토리알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던 4월의 어느 오후, 그는 쩐꾸옥또안(Trần Quốc Toản) 거리의 오이아(Oia) 카페에서 미얀마에 거주 중인 베트남 친구 응우옌 하이 아인(Nguyễn Hải Anh) 씨를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5년 전 바로 이곳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재회는 한 미국인 참전군인이 수도 한복판에서 ‘제2의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척 서시는 미얀마에 거주 중인 베트남인 친구 응웬 하이 아인 (Nguyễn Hải Anh)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오랜 세월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 두 사람의 재회는 따뜻하고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사진:꽁닷(Công Đạt)/베트남 픽토리알
척 서시는 하노이 쩐꾸옥또안(Trần Quốc Toản)거리의 단골 카페에 머물고 있다. 이 작은 카페는 오랜 세월 그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꽁닷(Công Đạt)/베트남 픽토리알

척 서시는 베트남전의 참혹함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다. 전쟁 이후 미 국무부가 지원하는 RENEW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그는 과거 전장이었던 지역들을 여러 차례 방문해 지뢰와 불발탄 피해를 겪은 주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이러한 여정을 통해 그는 베트남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고, 1995년 베트남에 정착해 지금까지 삶을 이어오고 있다.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진솔하게 답했다. “베트남의 문화와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특히 베트남의 정신문화는 미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가치입니다. 그것이 저를 이곳에 붙잡아 두는 끈이다. 나이나 건강 문제와 같은 큰 변수가 없다면, 저는 이곳에 계속 머물 것이다. 저에게 베트남은 살기 좋은 곳이다.”

하노이의 정취가 담긴 사진과 아늑한 공간, 그리고 젊은 직원들의 따뜻한 환대가 어우러진 오이아 카페는 그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직원들은 그의 커피 취향까지 기억하고 있으며, 그는 하루에 두세 번씩 이곳을 찾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도시의 평온한 리듬 속에 스며들기 위해서다.

 

30여 년 넘게 베트남에서 살아온 그는, 이 나라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이유로 ‘변화의 과정’을 꼽는다. “베트남이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들이 인상적이다. 관광은 국경을 넘어 사람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어줍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평화를 사랑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친절함과 따뜻함, 그리고 우리 같은 미국인들을 기꺼이 맞이하는 모습이 매우 기쁘다.”

독서는 베트남에서의 오랜 생활 동안 그가 꾸준히 이어온 습관 중 하나다. 사진:꽁닷(Công Đạt)/베트남 픽토리알

그에게 ‘이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좁은 골목을 거닐고, 노인과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베트남어로 소통하는 과정 속에서 그는 상대방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느낀다. 베트남의 문화와 사회 속에서 그는 정직함과 존중이라는 가치를 발견했고, 이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척 서시는 하노이 쩐꾸옥또안 거리에서 주민들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는 자연스럽고 친근한 베트남어로 소통하며 호감을 주고 있다. 사진:꽁닷(Công Đạt)/베트남 픽토리알

“나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그는 이렇게 말하며 이어갔다. “베트남이 통일을 기념하는 4월의 역사적인 날들 속에서 저는 그 기쁨을 함께 나눈다. 이 나라의 평화를 사랑한다. 평화만이 진정한 평온을 만들어내며, 저는 지금 하노이에서 그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노년에 접어든 지금, 많은 친구들이 미국으로 돌아가거나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다. 이웃과 친구들, RENEW 프로젝트 동료들, 그리고 ‘평화를 위한 재향군인회(VFP 160)’에서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은 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전쟁의 시간을 지나 베트남과 함께한 긴 여정을 거친 그는 이제 단순히 머무는 것을 넘어, 이곳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속하기 위해 남기를 선택했다. 사진:꽁닷(Công Đạt)/베트남 픽토리알

 

*  서시의 주요 이력

19676~ 19686: 베트남전 참전( 육군 군사정보부대 519대대, 사이공 주둔)

-1969: 미국 귀국  조지아대학교 재학, 베트남전 반대 참전용사 단체(VVAW) 활동 참여

- 1992: 오랜 공백 끝에 베트남 재방문

- 1995 ~ 현재: 베트남에 정착, 장기 거주  활동

- 꽝찌성 RENEW 프로젝트 공동 창립자, 베트남 주재 미국 재향군인기금(VVAF) 대표, ‘평화를 위한 재향군인회(VFP 160)’ 회장

-2003: 베트남 정부로부터 우호훈장 수훈

 

“내가 베트남에 머무르는 이유는 제가 경험한 순간들과 사람들 때문이다. 일상에서부터 깊은 인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저를 이곳에 머물게 한다.” 그에게 ‘고향’이란 단순하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집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기회와 이익을 기준으로 삶의 터전을 선택하는 시대에, 척 서시는 다른 길을 택했다. 느리게 살며, 조화롭게 어울리고, 하노이의 평온함을 온전히 누리는 삶이다. 소박하고 따뜻한 그의 모습은 이제 도시의 일부가 되었고, 그는 스스로 선택한 방식으로 이곳에 남아 있다. 소박하고 친근한 그는 어느새 이 도시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이곳에 머무르기로 선택한 이유 또한 분명하다.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 이곳에 속하기 위해서다../.

기자:빅 번(Bích Vân) - 사진: 꽁닷(Công Đạt)/베트남 픽토리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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