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기술, 이름 없는 영웅들에게 다시 이름을 돌려주다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넘은 오늘, 베트남 과학자들이 이룩한 DNA 감식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호국영령들의 이름을 되찾아 주며, 수십 년간 가족들이 간절히 기다려온 상봉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DNA 기술이 이뤄낸 새로운 돌파구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베트남 곳곳에는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 한 구 한 구는 유가족의 기억 속에 아직 끝나지 않은 공백이자,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짊어지고 있는 과제로 남아 있다.
베트남 국가 유해 발굴·수습 및 신원확인 지도위원회가 2027년 7월 27일 베트남의 현충일(상이군인 및 열사의 날) 80주년(1947년 7월 27일~2027년 7월 27일)을 맞아 추진 중인 '500일 캠페인'에서, 베트남 과학자들은 첨단 과학기술을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로 삼아 오랜 세월 이름을 잃었던 호국영령들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다.
7월, 베트남 과학기술원 산하 생물학연구소 DNA 감식센터를 찾은 취재진은 연구진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2019년 설립된 DNA 감식센터는 정부로부터 국가유공자 유해 신원확인을 위한 DNA 감식 업무를 수행하도록 지정된 핵심 기관 가운데 하나다.
실험실 안에서는 흰 보호복을 착용한 연구원들이 첨단 장비 사이를 조용히 오가고 있었다. 공간을 가득 메우는 것은 분석 장비의 작동음뿐이었다. 수십 단계에 이르는 정밀한 분석 과정은 몇 주에서 길게는 수개월에 걸쳐 이어진다.
DNA 감식센터의 쩐 쭝 타인(Trần Trung Thành) 센터장은 "베트남 전몰장병 유해는 열대 기후에서 장기간 매장되면서 DNA가 극도로 훼손돼 세계적으로도 분석이 가장 어려운 사례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의 미토콘드리아 DNA(mtDNA)나 핵 DNA 분석기법은 대량 분석과 유전자 증폭 과정에서 한계를 드러내 정확한 결과를 얻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 과학기술원에 DNA 감식센터와 생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국제실종자위원회(ICMP)와 협력해 새로운 감식기술을 연구·최적화하도록 했다. 새 기술은 핵 DNA 추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SNP(단일염기다형성) 분석을 통합한 최신 분석체계다.
새로운 감식 절차는 DNA 추출, 정량 분석, 증폭, 염기서열 분석 등 여러 단계를 거쳐 극히 적은 양의 유전물질만으로도 개인을 식별하고 유가족의 DNA와 정밀하게 대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여러 세대를 거친 친족 관계까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술 최적화를 통해 DNA 확보 성공률은 기존 약 22%에서 80%까지 크게 향상됐다.
쩐 쭝 타인 센터장은 "현재 까지 구축 중인 국가 주민 데이터베이스 내 유가족 정보와 DNA 분석기술이 연계되면 신원확인 절차는 더욱 신속하고 정확해질 것"이라며 "보다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호국영령들의 신원을 조속히 확인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드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를 마친 DNA 감식센터는 2025년 까오방성 짜린(Trà Lĩnh) 열사묘지와 안장성 롱지엥(Rồng Giềng) 열사묘지에서 시범사업을 실시해 순국선열 2명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이 성과는 2025년 베트남 10대 과학기술 성과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500일 캠페인'에서 DNA 감식센터는 6,632구의 순국선열 유해에 대한 DNA 감식을 맡아 2027년 7월까지 모든 분석을 완료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곳 연구진에게 한 건의 신원 확인은 단순한 과학적 성과를 넘어 수십 년 동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온 유가족에게 희망을 전하는 일이다.
유해 시료가 센터에 도착하면 연구진은 먼저 관련 정보를 등록하고, 시료의 상태를 분류한 뒤 출처를 확인해 관리 기록을 작성한다. 이후 시료는 세척과 건조 과정을 거쳐 분말 형태로 분쇄되며, DNA를 추출한 뒤 정량 분석을 실시하고 본격적인 유전자 분석 절차에 들어간다.
DNA 감식센터의 감정직원 레 중(Lê Dung) 씨는 "새로운 DNA 분석 기술은 매우 복잡한 만큼 높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며, 결과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단계에서 교차 검증을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해진 기간 안에 임무를 마치기 위해 대부분의 연구진이 여러 공정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다"며 "대다수의 시료는 분석 난도가 매우 높아 동일한 분석을 두세 차례 반복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쩐 쭝 타인 (Trần Trung Thành)센터장은 "가능한 모든 최적화 방법을 세 차례 적용했음에도 DNA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음 시료 분석으로 넘어간다"며 "한정된 연구 역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대량의 시료를 기한 내 처리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2027년 7월까지 모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DNA 감식센터 연구진은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에는 국제 전문가들의 협력도 더해지고 있다.
국제실종자위원회(ICMP)의 토머스 파슨스(Thomas Parsons) 선임 과학고문은 "미국 정부와 ICMP의 지원 아래 DNA 감식센터 연구진은 새로운 기술을 성공적으로 습득하고 자체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며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베트남이 오랜 기간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노력해온 끈기와 과학기술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였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에게 DNA 감식 결과는 과학기술의 성과를 입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세월 이름 없이 잠들어 있던 호국영령이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기사:응언 하(Ngân Hà) - 사진:카인 롱(Khánh Long)/베트남 픽토리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