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적인 땅에서의 새로운 날
역사적인 8월의 가을, 우리는 베트남 8월 혁명과 9월 2일 독립 기념일 80주년을 기념하며 민족의 빛나는 역사에 이름을 새긴 뚜옌꽝(Tuyên Quang), 꽝찌(Quảng Trị), 떠이닌(Tây Ninh)을 다시 찾았다. 우리가 발을 디딘 곳마다 80년간의 건국, 수호, 그리고 발전의 여정은 영감을 주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우리는 과거 “해방구의 수도”이자 “항전의 수도”였던 알려진 떤짜오(Tuyên Quang성)에 다시 왔다. 바로 이곳에서 1945년 가을, 당과 호찌민 주석의 영도 아래 베트남 국민은 총궐기하여 8월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이어 9월 2일 역사적인 바딘(Ba Đình) 광장에서 호찌민 주석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함으로써 오늘날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의 전신인 베트남민주공화국이 탄생했다.
떤짜오(Tân Trào)면 딴럽(Tân Lập) 마을에 사는 "역사 기록가" 호앙 응옥옹(Hoàng Ngọc.88세)은 여전히 호찌민 주석을 만났던 때와 1945년 8월 총궐기 당시의 영웅적인 기세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의 기억 속에, 1945년 8월 16일 떤짜오 정자에서는 호 주석과 당 중앙위원회가 각 정당, 구국 단체, 각 민족, 국내외 종교 대표 60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 대표 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이 대회는 다음과 같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전 국민이 단결하여 총궐기하여 정권을 획득할 것, 그리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임시정부인 베트남민족해방위원회를 선출할 것. 또한, 참가자들은 호찌민을 주석으로 추대하고, 오각별이 그려진 붉은 깃발을 국기로, 반 까오(Văn Cao) 작곡가의 '진군가(Tiến quân ca)'를 국가로 정하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이번 가을에 떤짜오를 찾은 우리는 새로운 삶의 리듬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풍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덕을 가로지르는 매끈한 콘크리트 도로는 평화로운 마을로 이어지고, 전통적인 수상가옥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과거의 숨결이 담긴 투어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숙소가 되었다. 이제 삶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편리한 도로, 현대적인 주택, 그리고 발전하는 경제는 이 땅의 역동적인 변화를 증명하고 있다.
지앙 뚜언 아잉(Giang Tuấn Anh) 떤짜오 면 당 위원회 비서장 겸 인민 의회 의장은" 떤짜오는 뚜옌꽝성 최초의 신농촌 표준 인증을 받은 마을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새로운 면이 개편 된 후에도 많은 어려움과 도전이 있었지만, 떤짜오의 당과 정부, 그리고 주민들은 혁명적 전통을 계승하고, 단결하여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우며 문명화된 고향을 건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다고 이렇게 말했다.
2025년 상반기에만 떤짜오 특별 국가 유적지는 5,000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을 맞이했다. 이는 이 역사적 장소의 강력한 매력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수치이다. 관광 개발 외에도, 마을은 농민들의 지속 가능한 생계를 위해 작물과 가축의 구조를 바꾸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과학 기술을 적용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혁명적 전통이 풍부한 이 땅이 매일같이 발전하며 변화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1954년 제네바 협정이 체결되면서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나뉘었고, 꽝찌(Quảng Trị)성의 벤하이(Bến Hải) 강을 지나는 17도선이 임시 군사분계선이 되었다. 벤하이 강을 가로지르는 히엔르엉(Hiền Lương) 다리는 20년간 이어진 민족의 분단 고통과 조국 통일 염원의 상징이 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이 작은 땅 꽝찌는 무수한 고통과 참혹함을 겪었다. 17도선, 히엔르엉(Hiền Lương)다리, 벤하이 (Bến Hải)강, 타익한(Thạch Hãn) 강, 맥나마라(McNamara) 전자 울타리, 케산(Khe Sanh), 9번 국도, 꼰띠엔(Cồn Tiên), 족 미에우(Dốc Miếu), 꼰꺼(Cồn Cỏ), 빈린(Vĩnh Linh), 빈목(Vịnh Mốc)... 등 꽝찌의 많은 지명들이 베트남뿐만 아니라 인류의 현대 전쟁 역사에 기록되었다. 특히, 꽝찌 (Quảng Trị)고성은 불과 3제곱킬로미터도 안 되는 작은 땅이었지만, 1972년 81일 밤낮 동안 미군이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7개에 맞먹는 엄청난 양의 폭탄을 쏟아부었다.
전쟁 후, 꽝찌 성의 95%가 파괴되었고, 전체 면적의 80% 이상이 폭탄과 지뢰로 오염되었다. 모든 어려움과 도전을 극복하고, 꽝찌성은 삶과 경제,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며 힘차게 일어섰다.
특히, 2025년 6월에는 기존의 꽝찌성과 꽝빈(Quảng Bình)성이 개편되어 새로운 꽝찌성이 탄생함으로써, 북부 중부 지역의 종합 경제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한 장기적인 비전과 함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동-서 경제 회랑과 라오바오(Lao Bảo), 라라이(La Lay), 짜로(Cha Lo) 국제 국경 관문은 남북 고속도로, 호찌민 도로, 동허이(Đồng Hới) 공항,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들어설 꽝찌(Quảng Trị) 공항, 남북 고속철도, 미투이(Mỹ Thủy), 혼라(Hòn La) 심해 항만과 긴밀하게 연결될 것이다. 꽝찌는 베트남과 아세안 국가들을 잇는 전략적 연결 허브이자, 바다와 육지를 잇는 중요한 가교로서, 전 세계 무역과 투자를 맞이할 준비가 된 지역의 종합 경제-물류 중심지가 될 것이다. 또한, 청정 에너지(풍력, 태양광), 해양 관광, 야생 자연 관광, 문화, 유산, 혁명 관광 등도 이 땅의 큰 잠재력이다.
전쟁의 그림자는 멀어졌고, 불과 피로 얼룩졌던 꽝찌성은 이제 평화와 자유, 풍요, 그리고 번영을 향한 열망의 꽃을 피우고 있다.
전쟁 기간 동안 남부 중앙위원회 기지는 남부지방 혁명의 수도가 되었고, 당의 수많은 고위 지도자들과 전사들이 남부 전선, 특히 남부 지역에서 민족의 신성한 미국과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고되고 헌신적으로 활동했던 자랑스러운 장소였다.
오늘날, 짱리엑(Chàng Riệc) 숲속 깊은 곳에 위치한 남부 중앙위원회 기지의 특별 국가 유적지는 군사 기지, 지하실, 그리고 연결된 지하 터널 시스템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남부의 지붕인 바덴(Bà Đen)산이 평야 한가운데 우뚝 솟아 떠이닌의 역동적인 발전을 상징한다.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케이블카 시스템을 통해 방문객들은 산 정상에 쉽게 올라가 72m 높이의 바 여신상(tượng Phật Bà)을 감싸는 하얀 구름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오늘날 떠이닌은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잇는 중요한 무역 가교이자, 아세안 시장으로 나아가는 관문이다. 호찌민 시와 캄보디아 프놈펜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축인 목바이(Mộc Bài) 국제 국경 관문은 밤낮으로 무역 차량들로 북적이다. 22번 국도를 따라 물류 창고와 서비스 시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무관세 구역이 조성되고 있으며, 이는 목바이를 전략적 상품 환승 센터로 변화시킬 것이다.
또한 떠이닌은 베트남 동남부 지역의 중요한 산업 중심지이다. 프억동-버이러이(Phước Đông-Bời Lời), 짱방(Trảng Bàng) 산업 단지에는 수백 개의 국내외 기업들이 모여 있으며, 특히 가공, 전자, 섬유, 재생에너지 산업이 두드러진다.
산업과 더불어, 떠이닌성은 사탕수수, 카사바, 고무 등 남부지방의 농산물 중심지이기도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지역은 현대적인 이스라엘 점적 관개 시스템으로 관리되는 미니 토마토, 멜론, 파프리카 등을 재배하는 하우스들이 밭을 가득 채우며 하이테크 농업으로 강력하게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모형들은 떠이닌의 농산물이 국제 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힘들었지만 영웅적이었던 이 땅이 전국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빛나는 떠이닌의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자: 베트남 픽토리알/ 두언롱(Tuấn Long), 탄화(Thanh Hòa), 황하(Hoàng Hà), 통하이(Thông Hải), 응웬 루언(Nguyễn Luân)- 번역: 레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