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예술인 가문에 대한 이야기

고 보안카잉(Võ An Khánh) 기자, 사진작가는 베트남 전국으로 수천 개의 사진작품을 찍었는데 그 중에 베트남전쟁 때 전쟁기자로서 활동하면서 사진으로 남긴 순간들도 포함된다.
사진 분야에 활동하는 사람들은 까마우-박리우에(Cà Mau - Bạc Liêu)지역을 포함한 메콩 상각주에는 보안카잉 사진작가가 있어서 아주 자랑스럽다고 항상 이야기한다.
2022년 호찌민상 후보에 오른 그의 사진집은 독자들을 감정의 롤러코스터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슬픔, 감사, 감탄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베트남 여성들과 베트남 국민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귀결되었다. 이 사진들에 대해, 호찌민 주석은 보안카잉 사진작가의 사진집 소개글에서 “그녀들은 영웅적이고 굴복하지 않고 충성심이 깊으면서 유능적인 베트남의 상징으로 변모했다"다고 글을 남겼다.
사진 예술인 가문에 태어나서 어린 때부터 김끄엉(Kim Cương)사진작가는 사진기에 푹 빠지며 생활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찍기 시작했다. 공부 다 마친 후 그녀는 덧무이(Đất Mũi) 사진잡지에 취직했으면서 본격적으로 사진 작가로써의 삶을 열정으로 살기 시작했다.
이 후 그녀는 북부부터 남부까지 빠지지 않고 어디든 다 방문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지방-지역-국가-국제적인 사진상에 점점 많이 수상하게 됐다. 그녀는 "예술은 일찍이나 늦음, 건강하거나 약하거나, 젊거나 늙은 개념이 없다. 예술은 순수한 사랑과 진정한 열정 그리고 헌신적인 헌신을 필요로 한다."라고 말했다.
김끄엉(Kim Cương)사진작가의 작품에는 그녀의 아버지인 고 보안카잉(Võ An Khánh)사진작가의 창조적 인 예술 양식과 주제, 여성에 대한 감정, 그리고 그녀의 남편인 다아잉로(Đặng Anh Rô)사진작가의 평범하고 친근하고 평범한 주제 사이의 교차, 조화로움이 존재한다고 느꼈다.
김끄엉(Kim Cương)사진작가의 남편인 다아잉로(Đặng Anh Rô)사진작가는 장인아버지 고 보안카잉(Võ An Khánh)사진작가에게 가르침을 받아 사진분야에서 성과를 달성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덧무이(Đất Mũi) 사진잡지(1982), 밍하이(Minh Hải)신문 (1983), 박리에우(Bạc Liêu)신문(1997) 등 여러 직장에 다니면서 생활의 여러 순간을 기록했다.
그는 성공한 언론인이나 연예인은 각자 스타일이 필요한데 다른 말로 하면 "질"이라고 하며 모든 사람의 내면에서부터 나오는 폭발적인 감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작품에 녹아든다고 밝혔다.
다아잉로(Đặng Anh Rô)사진작가의 작품에서 "순수성", 농부성, 일상생활의 숨결이 강한 노동성을 느낀다. 이 문제에 대해 논하헀을 때, 고 보안카잉(Võ An Khánh)사진작가도 같은 생각이었다. 고 보안카잉 사진작가는 당아잉로 사진작가가 올바른 방향을 선택하게 되어 매우 기쁜데 자신에게 배웠지만 아주 유연하고 창의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다아잉로(Đặng Anh Rô)사진작가는 '부활의 신호' 라는 작품으로 1993년 메콩삼각주 은메달과 1995년 밍하이(Minh Hải)성 예술시상 사진부분 대상, '농부의 그림'작품으로 1996년 메콩삼각주 장려상과 1995 스리랑카 국제상 대상, "풍년"작품으로 1998년 전국사진상에 참석 등 여러번 수상하였으며 일찍부터 사진 분야에서 잘 알린 사진작가이다. 현재, 그는 베트남사진작가협회의 박리에우(Bạc Liêu)성 지사장직을 겸하고 있다./.
사진: 고 보안카잉(Võ An Khánh)사진작가, 김끄엉(Kim Cương)사진작가, 다아잉로(Đặng Anh Rô)사진작가 - 디자이너: 짱느웅(Trang Nhung) - 번역: 민투(Minh Th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