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탐방

황사 ․쯔엉사 군도에 관한 사실을 간직한 곳

황사 ․쯔엉사 군도는 오랫동안 베트남인들의 신성한 영토였다. 그리고 수차례 주장했듯이, 베트남은 국제 법에 부합하는 황사와 쯔엉사 두 군도에 대한 베트남의 주권을 긍정하는 충분한 법적 근거와 역사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국내외에 존재하는 많은 자료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리고 다낭에 있는 황사 전시관은 이 두 군도에 대한 베트남의 주권에 관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증거들을 보관하고, 전시하고, 소개하는 생생한 사례이다.
황사 전시관은 다낭시 황사 섬 인민위원회가 2015년 12월 7일 황사 거리 (다낭시 선짜 지구) 에 착공되어 2018년 3월 28일 정식 활동에 들어갔다. 이 건축물은 WRIGHT (일본)회사 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총면적 1,296m² 의 부지에 건설되었다. 이중 건축면적은 412m² 이고, 지상 3층, 높이 18m, 연면적 1,824m² 이다. 건물 전면은 태양광의 반사작용으로 금성 붉은색 깃발 이미지를 표시할 수 있는 무늬를 갖춘 형태로 동해를 향해 있다. 조국의 황사와 쯔엉사 두 군도로 향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대적인 멀티미디어 전시 기술을 바탕으로 황사 군도 및 쯔엉사 군도의 행정, 자연 지리, 법률, 역사 자료, 동영상, 사진자료가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황사 전시관은 황사와 쯔엉사 두 군도에 대한 베트남의 주권에 관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증거들을 보관하고 전시하고 소개하는 곳이다.
사진:탄화(Thanh Hòa)


관광객들이 베트남 황사의 역사에 대해 탐방하며 자부심을 느낀다.사진:탄화(Thanh Hòa)


황사 주권 기둥은 중심부에 근엄한 모습으로 재현되었다사진:탄화(Thanh Hòa)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베트남 황사 주권에 관한 법률 문건을 전시하고 있다사진:탄화(Thanh Hòa)


관광객들이 17세기 베트남인들이 황사로 올때 사용했던 요트 모형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탄화(Thanh Hòa)


베트남 황사와 쯔엉사 주권에 대해 서술한 응웬 왕조의 실록들 (응웬 왕조의 왕들이 승인한 행정 문서) 을 전시하고 있다. 
사진:탄화(Thanh Hòa)


황사에서 잡히는 여러 가지 수생물의 표본. 사진:탄화(Thanh Hòa)


1858년부터 1945년까지 황사 제도 (Hoangsa Islands)의 베트남 활동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탄화(Thanh Hòa)
건물의 전시공간은 총 9개의 주요 테마로 나뉘어져 있으며, 수천 개의 자료와 다양한 생체 현물로 구성되어 있다. 1 / 지리적 위치 및 자연조건; 2 / 응웬(Nguyễn)왕조 이전의 베트남 문헌에 있는 황사; 3 / 응웬(Nguyễn)왕조 시대의 고대 베트남 문헌에서 황사; 4 / 황사제도에 대한 베트남의 주권을 입증한 중국과 서양의 자료들; 5 / 1858-1954년의 황사군도에 대한 베트남의 주권; 6 / 1954-1974년 황사 열도에 대한 베트남의 주권; 7 / 1975년 이래 황사군도에 대한 국가 관리 문서; 8 / 세계와의 황사 - 황사와의 세계; 9 / 황사와 역사적 목격자들. 

각 사진, 각각의 자료, 각각의 지도, 각각의 유물 등, 이곳에 전시된 것들은 황사와 쯔엉사 두 군도에 대한 베트남의 주권에 대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증거이면서 역사적, 법적으로 귀중할뿐만 아니라 고국의 혈맹의 바다를 지키고 보호하는 일에 대하여 국내외의 1억 명이 넘는 베트남 동포들의 자부심과 의지의 힘을 북돋우는 신성한 보물들이다.  

예를 들어 황사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대남실록” 책 (응웬 왕조의 정사부) 24권, 10권을 보면 “1754년 가을, 7월에는 꽝응아이(Quảng Ngãi) 성에 황사 사람들이 배를 타고 황사 섬으로 가다가 뀡차우(Quỳnh Châu)해역에서 태풍을 맞은 청나라 배를 발견하였다. 청나라의 총독이 곧 사신을 급파하고 선원들을 데려왔다. 신에게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130개 이상의 모래 사장이 서로 떨어져 있다가도 하루가 꼬박 걸리는 길도 나있다. 혹은 몇 개의 북으로, 몇 천 마일이나 지속되기에 “만리 쯔엉사“ 라고도 불리운다. 해변가에는 담수 우물이 있다. 해산물로는 해삼, 미끼, 달팽이, 망토, 해삼 등이 있다.  황사에 70인이 와서 안빈 읍 사람들을 데리고 해마다 3월이 되면 배를 타고 나와 삼일 밤쯤 마장에 가서 물건을 거두어다가 8월에 내고, 빙투언(Bình Thuận)에 있는 드찬(Tứ Chánh) 촌에 있는 박하이(Bắc Hải) 조직이나 간즈엉(Cảnh Dương)면에 있는 사람들이 와서 작은 배나 조각배를 타고 지나다니며 수집품을 찾아갔다. 이 조직도 황사가 겸임하고 있다."

또 목본인 “대남실록 일년간서” (응웬 왕조의 쯔엉사)의 6권, 50권에도 명시되어 있다. "금년 2월, 지롱 왕 14년 (1815년), 팜꽝안(Phạm Quang Ảnh) 무리를 황사군도단이라 칭하고 황사 섬으로 보내 바닷길을 탐사하케 하였다." 

레왕조 (18세기) 시기에 편찬된 ‘천하 지도집’ 에서 꽝응아이(Quảng Ngãi)성의 모습을 그린 지도에도 문구에 “황사 해변” 이라는 지명이 명시되어 있다. 다이치엠(Đại Chiêm) 문부터 꾸엣몽(Quyết Mông)문까지 서남풍이 불면 배는 주로 이곳을 표류하게 된다. 북동풍이 불 때 배를 띄우면 또 이곳에 표류하게되어 아사하여 배위에 자산들이 그대로 바다에 가라 앉는다. 매년 겨울 마지막 달이 되면 18척의 배가 금괴를 수거하러 간다. 대공문까지 가는 데 하루 반, 사경 문까지 하루 반이 걸린다.
사진:탄화(Thanh Hòa)


1858년부터 1945년까지 황사군도상에서의 베트남의 활동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
사진:탄화(Thanh Hòa)


황사 해군의 활동 권한과 기능을 소개하는 구역은 17세기부터 응우옌 주 정부에 의해 이미 수립되었다.
사진:탄화(Thanh Hòa)


방문객들이 베트남의 황사 주권을 증명하는 문헌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방문하고 있다. 사진:탄화(Thanh Hòa)


응웬(Nguyễn)왕조 시대의 지도와 문헌을 통해서 보는 베트남의 황사 주권소개 자료.사진:탄화(Thanh Hòa)


황사 전시관의 간부가 베트남 주권하의 섬 및 해역을 소개한다.  사진:탄화(Thanh Hòa)
또한 레왕조 (18세기) 시기에 편찬된 ‘천하 지도집’ 에서 꽝응아이(Quảng Ngãi)성의 모습을 그린 지도에도 문구에 “황사 해변” 이라는 지명이 명시되어 있다. 다이치엠(Đại Chiêm) 문부터 꾸엣몽(Quyết Mông)문까지 서남풍이 불면 배는 주로 이곳을 표류하게 된다. 북동풍이 불 때 배를 띄우면 또 이곳에 표류하게되어 아사하여 배위에 자산들이 그대로 바다에 가라 앉는다. 매년 겨울 마지막 달이 되면 18척의 배가 금괴를 수거하러 간다. 대공문까지 가는 데 하루 반, 사경 문까지 하루 반이 걸린다.

다시 말해서, 위의 예시와 현재 이 곳에 보관되어 있는 다른 많은 자료들이 황사와 쯔엉사 두 군도에 대한 베트남의 주권에 대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법적 증거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황사 전시관은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 문화적, 역사적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황사군도와 쯔엉사 군도에 대한 베트남의 주권 보호, 확립, 개척과정에 대한 가치, 생생한 이미지, 자료, 정보 등을 다수의 베트남 국민과 국제 친구들에게 전시, 소개, 홍보한다./.
 
기자:탄화(Thanh Hòa)
 

하띠엔(Hà Tiên)의 막끄우(Mạc Cửu)능을 찾아가다

하띠엔(Hà Tiên)의 막끄우(Mạc Cửu)능을 찾아가다

막끄우(Mạc Cửu)능 유적 지역은 하띠엔시의 인상적인 문화적, 역사적 장소이며 300여 년 전에 이 나라 남서부 지역을 탐사하고 개발했는 하티엔의 통치자인 막끄우(Mạc Cửu) 에 대한 원주민들의 감사와 애정을 여러 세대에 걸쳐 보여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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