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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 주석 탄신 131주년

오는 5월 19일은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의 원동력이 된 호찌민 주석 탄신 131주년 기념일이다. UNESCO는 1990년 호찌민 주석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호찌민 주석을 “베트남 민족해방의 영웅이자 세계적인 문화인”으로 공인하였다. 베트남 민족의 표상이자 자부심인 호찌민 주석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베트남과의 교류 협력관계를 진작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 세계적인 전염병 확산이 우려되어 기념행사가 속속 취소되고 있어 아쉽다.




호찌민 주석의 성(姓)은 응웬(阮)씨

많은 사람들이 호찌민 주석의 성이 <호>씨, 이름은 <찌민>으로 알고 있으나 호찌민이란 이름은 호찌민 주석이 생전에 사용하던 무려 174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는 1890년에 태어나 나이 11살 때 응우옌떳타인(阮必成)이란 이름으로 개명하여, 1969년 서거하기까지 174개의 가명과 필명을 사용하였다. 독립운동을 하면서 프랑스 식민 당국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수시로 이름을 바꿔 사용했기 때문이다. 호찌민 주석은 지금으로부터 131년 전인 1890년 5월 19일 응에안성 남단현 낌리엔리 샌 마을의 조그만 오두막집에서 3남1녀의 셋째로 태어났다. 호찌민이란 이름은 1942년 8월 27일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갔다가, 광시(廣西)성에서 당시 장제스 장군의 군대에 체포되었을 때 소지하고 있던 신분증에 기재되었던 이름이다. 이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계속 사용한 이름, 27년간이나 사용한 이름이자 마지막 이름이다. 베트남에서는 모두 끝이름으로 사람을 부르는데 호찌민 주석만 유일하게 성(姓)으로 부른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호칭할 때의 방식처럼 박(큰 아버지)민이 아니고 박호(호 큰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만큼 베트남 역사에 남을 유일무이한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호찌민 주석은 3남1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동생은 태어나서 1년도 안 되어 사망하였다. 호찌민 주석은 11살에 어머니(호앙티로안)를 잃었다. 부친(응우옌신삭)은 조선에서 동학혁명이 발생한 1894년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프랑스 식민정청의 고위관리가 되었다. 그러나 근무 성적이 좋지 않아 프랑스 식민당국에 의해 벽지로 좌천되었다가, 프랑스 법을 어긴 동포를 관대히 처분하였다는 이유로 파면당하였다. 프랑스 식민시대 관료제도에 환멸을 느낀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학교 정규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아, 후에 소재 국학교(중학교 과정) 졸업이 호찌민 주석의 최종학력이다. 호찌민은 1911년 6월 5일에 21세의 나이로 자신의 민족주의적 야망을 후원해 줄 수 있는 후원자를 찾으러 사이공 항구에 정박 중이던 프랑스 상선 <아미랄 라뚜쉬 뜨레빌>호의 보조 요리사로 승선하여 프랑스로 갔다. 금년은 호 주석이 구국의 길을 찾기 위 해 조국을 떠난 지 110주년이 된다. 사이공 항구 근처에 있는 냐롱은 호 주석이 110년 전에 구국의 길을 찾아 떠난 자리에 세운 기념관이다. 이때부터 30년 간을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생계유지를 위해서 수많은 고생을 하였다. 사이공은 통일 다음 해인 1976년 7월 2일 그의 이름을 따서 호찌민시로 변경하였다. 그래서 지명을 말할 때는 반드시 “호찌민시” 또는 “타인포 호찌민(Tp. HCM)”로 말하거나 쓰도록 규정화되어 있는 것이다.

옥중일기는 베트남의 보물 10호
호찌민 주석은 1942. 8. 27-1943. 9. 10까지 380일간 중국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군대에 의하여 체포되어 중국 광시성 13개 현(縣)의 18개 감옥에 수감생활을 하면서 쓴 133편의 한시집인 <옥중일기(獄中日記)>가 있다. 옥중일기는 베트남 사람이 베트남어가 아닌 당율(唐律)에 따라 쓴 한시집이다. 옥중일기를 통해서 극한 상황에 처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해학적 사고방식, 겸손한 인간성은 물론 동서양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다. 베트남 정부는 2012년 10월 1일 육필 <옥중일기>를 국가보물(제10호)로 지정하였다. 그는 나라를 세우고 완전한 독립을 위해 프랑스와 전쟁을 치렀고 대승을 거두어 독립을 달성하였다. 베트남의 5천년 역사를 새로 쓴 호찌민 주석을 이해하는 것은 베트남을 이해하는 첩경이다. 호찌민 주석은 “독립과 자유보다 귀한 것은 없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켜 준 인물이다. 내년이면 한국과 베트남이 외교관계를 정상화한지 30주년이 된다. 갖가지 기념행사를 통해서 향후 60주년을 내다보는 미래지향적인 한•베 우호협력 관계가 다져지기를 기대한다. 
안경환/한국글로벌학교(KGS)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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