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박리에우 농민의 불굴의 정신을 보여준 유적지

거의 백년 전 므어쯕(Mười Chức)형제의 반란이 발생된 박리에우(Bạc Liêu), 짜라이(Giá Rai), 퐁타익(Phong Thạnh)읍에 위치한 넉낭(Nọc Nạng)논밭은 국가급인 역사-문화유적으로 됐으며 이 유적에 관련 이야기를 통해 베트남 남부지역에서 농민이 식민주의 및 봉건제도 매우 가혹한 통치를 저항한 과정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알리는데 도움이 됐다. 

옛날에 짜라이(Giá Rai)구역은 카우푸치수목, 갈대, 잔디 등의 숲과 진흙탕으로 황량한 지역이었다. 처음으로 찾아오는 유민들이 진흙탕으로 나무 말뚝(지역 사투리: nọc)을 박고 기둥 사이에 대들보(지역 사투리: nạng)를 건너지는데 집으로 만들어서 맹수나 독뱀을 피할 수 있다, 이래서 넉낭(Nọc Nạng)으로 부르게 됐다.
 

이 장소에서도 1928년 인도차이나 전체를 흔들린 사건을 발생됐는데 므어쯕(Mười Chức)농민형제 가족이 식민주의의 매우 가혹한 통치를 저항한 반란이다.
 

지난 세기 1900년대 초에 응웬타잉루엉(Nguyễn Thành Luông)마을 사람들의 작은 분쟁을 중재자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넉낭(Nọc Nạng)에 위치한 73ha의 개척지를 목발에 있는 숲에 남겨 받았다. 1912년에 그는 73ha의 전체 면적에 대한 측정을 해서 토지 소유권 증명을 신청했고 박리에우(Bạc Liêu)성장에게 승인을 받았고 토지지도 받았다. 이후 사망이후 그의 아들 응웬반또아이(Nguyễn Văn Toại, 일명 비엔또아이)에게 토지 소유권 남겨줬다.



넉낭(Nọc Nạng) 유적지 기념관

사진: 레밍(Lê Minh)



넉낭(Nọc Nạng) 유적지에서 므어즉(Mười Chức)형제 가족의 묘지

사진: 레밍(Lê Minh)



유적지에서 평안로운 풍경

사진: 레밍(Lê Minh)



유적지에서 푸른 나무 아래에 시원한 거리

사진: 레밍(Lê Minh)
 


넉낭(Nọc Nạng) 유적지는 반란에 관한 용품을 전시하는 기념관, 지난 시대 박리에우(Bạc Liêu) 논밭에서 농민의 생활을 표현하는 논밭 모형, 1928년 넉낭 반란을 재현하는 반란모형, 그리고 므어즉(Mười Chức)형제 가족의 묘지 등 포함된다. 

1917년에 박리에우(Bạc Liêu)에서 유명한 부유인 방닥(Bang Tắc)화교가 비엔또아이(Biện Toại)가족의 땅을 약탈하는 수법을 썼다. 양측의 토지 분쟁이 발생했고, 여러 차례 재판을 통해 비엔또아이(Biện Toại)가족은 방닥(Bang Tắc)에 의해 당국에 손금 지불에 대한 소송에서 패소했다. 그 후 방닥은 이 땅을 관저에게 팔렸다. 역설적으로 새로운 주인은 비엔또아이(Biện Toại)형제 가족에게 자신의 땅에 토지세를 제출하도록 강요했다.

 

이 반란은 병사들이 비엔또아이(Biện Toại)형제 가족의 벼를 압수하러 찾아오는 1928년 2월 13일~14일 후에 발생됐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비엔또아이(Biện Toại)형제는 자신의 땅을 보호하기 결심하기 위해 미리 준비했다.

 

1928년 2월 16일 오전 병사들도 벼를 압수하기 위해 찾아왔는데 비엔또아이(Biện Toại)형제는 칼, 막대기 등으로 병사와 결전하기로 했다. 결국, 므어즉(Mười Chức), 임신중인 므어즉의 부인 응이아(Nghĩa), 넌(Nhẫn), 닌(Nhịn) 등 비엔또아이(Biện Toại)형제가 총을 맞고 사망됐다. 프랑스 병사 한 명은 배로 칼로 질러서 사망했다.

 

당시에 이 반란은 전국 떠들썩하게 했고 비엔또아이(Biện Toại)형제는 승소 판결을 받았다. 특히 그들의 맹렬한 무공을 기록하기 위해 오늘날 박리우에성은 넓은 공간에서 넉낭 유적지를 건설하여 옛 박리에우 농민들의 생활 장면과 투쟁 장면을 재현됐다.



유적지 기념관에서 므어쯕 형제의 동상

사진: 레밍(Lê Minh)
 


넉낭 논밭에서 불모지를 개간한 므어쯕 향제의 모습을 재현됐다.

사진: 쫑찡(Trọng Chính)



므어쯕(Mười Chức)농민형제 가족이 식민주의의 매우 가혹한 통치를 저항한 반란을 재현됐다.

사진: 쫑찡(Trọng Chính)

 


Tournier 프랑스 병사를 찔러 죽인 프엉쯕 농민형제의 모습을 재현

사진: 쫑찡(Trọng Chính)





유적지 기념관에서 므어즉(Mười Chức)형제 가족이 일상생활에 쓴 농구를 전시하는 공간

사진: 쫑찡(Trọng Chính)



유적지 기념관

사진: 레밍(Lê Minh)
 

녹낭(Nọc Nạng)논밭에서 발생된 불굴의 정신에 대한 이야기는 남부 불모지를 개간하는 과정의 역사에 대한 대표적인 스토리로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으며, 팜응옥쭈엔(Phạm Ngọc Truyền)의 “넉낭 논밭에서 붉은 피”극과 “녹낭 논밭”영화에도 소개됐다./.
 

기사: 응웬부타잉닷(Nguyễn Vũ Thành Đạt)

사진: 쫑찡(Trọng Chính) 및 레밍(Lê Minh)

번역: 민투(Minh Thu)


하노이 문묘·국자감 야간 투어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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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하노이 문묘·국자감 과학문화활동센터는 ‘도교의 본질’이라는 주제로 문묘·국자감 야간 투어 운영을 개시하며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문묘·국자감 야간 투어는 특별 국가 유물 유적지의 고유한 가치를 홍보하고, ​​방문객들이 야간에도 문묘와 국자감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여 하노이 관광을 더욱 풍부하게 제공한다는 목표로 진행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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