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베트남 국회 80년, 민족과 함께한 동행의 역사

민족과 함께하며 동행해 온 80년의 여정 속에서, 베트남 국회는 전 민족 대단결의 상징이자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 인민의 최고 대표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국회는 조직과 운영 방식 전반에서 끊임없이 성장과 혁신, 완비를 거듭하며 활동의 효율성과 실효성을 높여 왔고, 이를 통해 국가 건설·수호·발전의 대업에 대한 인민의 신뢰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해 왔다. 베트남 국회 최초 총선 80주년(1946.1.6~2026.1.6)을 맞아, 전 당·전 국민·전 군은 국회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을 갖고 있다.

 


 


민족과 함께하며 동행해 온 80년의 여정 속에서, 베트남 국회는 전 민족 대단결의 상징이자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 인민의 최고 대표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국회는 조직과 운영 방식 전반에서 끊임없이 성장과 혁신, 완비를 거듭하며 활동의 효율성과 실효성을 높여 왔고, 이를 통해 국가 건설·수호·발전의 대업에 대한 인민의 신뢰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해 왔다. 베트남 국회 최초 총선 80주년(1946.1.6~2026.1.6)을 맞아, 전 당·전 국민·전 군은 국회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을 갖고 있다.

출범 직후 제1대 국회(1946~1960)는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최고 권력기관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했다. 1946~1954년 동안 국회는 인민과 함께 항전과 건국의 과업을 수행했는데, 이는 이 시기 베트남 국회의 매우 독특한 특징인 ‘항전 국회’의 모습이었다. 국회는 권한을 정부에 집중시키되, 국회 상무위원회는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며 주요 노선과 정책에 의견을 제시하고 정부 활동을 감독·비판했다. 1954~1960년에는 북부에서 사회주의 노선을 따라 경제·문화·사회 전반의 복구와 개조, 발전을 추진하는 한편, 남부에서는 민족민주혁명을 지속하며 남부 해방과 평화적 조국 통일을 향한 투쟁을 이어갔다.

14년간의 활동 기간 동안 제1대 국회는 총 12차례의 회의를 열어 1946년 헌법과 1959년 헌법을 제정·통과시켰으며, 16개 법률과 50개의 중요 결의를 채택했다.



호찌민 주석이 1969년 4월 27일 하노이 바딘(Ba Đình)구역 제1투표소에서 제5대 인민의회 대의원 선거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베트남 통신사
 

이 시기 국회는 1959년 헌법과 1960년 국회조직법에 따라 운영되었다. 북부가 사회주의 건설을 추진하고, 항미구국전쟁의 거대한 후방 역할을 수행하던 시기였다.

1960년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소수민족인 만(Mán)족 유권자들이 선거 홍보 포스터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 부 틴(Vũ Tín)기자 / 베트남 통신사
제6대 전국인민대표대회 첫 회의에서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으로 개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1976년 4월 25일 총선에서 선출된 국회를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제6대 전국인민대표대회로 정했으며, 사이공-자딘 시(Sài Gòn-Gia Ðịnh)를 호찌민시로 공식 개칭하기로 결정했다. 사진: 베트남 통신사

제2대부터 제5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국회는 경제·외교·행정조직 분야의 다수 중요 법률과 결의를 통과시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국가적 역량을 보장했고, 총공세와 봉기를 통해 민족민주혁명을 완수하고 조국 통일에 기여했다.특히 제6대 국회(1976~1981)는 통일 베트남의 국회로서 국호를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으로 결정하고, 국기·국장·국가를 규정했으며, 사이공–자딘(Sài Gòn – Gia Định)을 ‘호찌민시’로 개칭하고 통일 국가의 수도를 하노이로 확정했다. 이어 제7차 회의(1980년 12월)에서는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의 새 헌법인 1980년 헌법을 통과시켰다.

이 시기 국회는 1980년 헌법과 1981년 국회·국가평의회 조직법에 따라 조직·운영되었다. 국회는 인민의 최고 대표기관이자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의 최고 국가권력기관으로, 헌법 제정과 입법 권한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며 국가 전반의 활동에 대한 최고 감독권을 수행했다.

제7대 국회(1981~1987)와 제8대 국회(1987~1992)는 2개 법전, 35개 법률, 35개 결의를 통과시켰고, 국가평의회는 54개의 법령을 공포했다. 특히 제8대 국회는 당 제6차 전국대표대회가 제시한 전면적 국가 쇄신(Đổi mới) 노선의 초기 단계를 담당한 국회였다. 제11차 회의(1992년)에서는 1992년 헌법이 통과되었다.

응웬 푸  (Nguyễn Phú Trọng)국회의장이 2009 체코 프라하를 방문해 베트남어 수업을 찾아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 치 중(Trí Dũng)/ 베트남 통신사

이 시기는 국회가 지속적으로 혁신하며 활동의 질을 높여 온 시기이다. 국회 운영은 점차 공개성과 투명성이 강화되었고, 입법(법률 제·개정), 감독(최고 감독권 강화), 국가의 중요 사안 결정이라는 세 가지 핵심 기능에 집중해 왔다.

제9대부터 제12대 국회까지는 입법과 감독, 대외활동 전반에서 강력한 개혁을 추진했으며, 법 집행 점검단 파견, 보고 청취, 반부패 등 사회적 현안에 대한 집중 감독이 이루어졌다.

 타인  (Trần Thanh Mẫn)국회의장이 2024 10 13 하노이를 공식 방문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접견하며 양국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쪼안 두언(Doãn Tấn)/베트남 통신사
2015 뉴욕 UN 본부에서 열린 4 세계국회의장회의에 참석한 응웬   (Nguyễn Sinh Hùng)국회의장이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   (Nhan Sáng)기자 / 베트남 통신사
2024 9 10 (현지방) 러시아 크렘린(Kremli) 궁에서  타인 (Trần Thanh Mẫn)국회의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있다.  사진: 통넛(Thống Nhất) –베트남 통신사

제13대 국회(2011~2016)는 전국 유권자가 국회의원 선거와 각급 인민의회 의원 선거를 같은 날 동시에 실시한 첫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 시기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2013년 헌법 초안을 표결로 통과시킨 것이다. 또한 국회가 선출·비준한 직위에 대해 최초로 신임 투표를 실시하고, 정부 구성원 전원이 국회 질의응답에 참여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제14대 국회(2016~2021)는 2013년 헌법의 규정을 구체화하고 국가기구를 완비하기 위한 다수의 중요 법률을 제정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해 온라인 회의와 대면 회의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회기를 운영하며 정보기술 활용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뤘다.

 제15대 국회(2021~2026)는 역대 최고 수준인 99.6%의 유권자 투표율로 선출되었다. ‘능동적 입법’ 기조 아래 입법 활동을 전개하며 정치체계의 조직을 정비·간소화하는 데 필요한 법률 개정에 집중해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까지 제15대 국회는 총 17차례의 회의를 개최했으며, 이 중 9회는 임시회, 8회는 정기회였다.

베트남 1 총선거8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또럼(Tô Lâm)당서기장이 국회의 역할과 미래 비전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사진:쪼안 두언(Doãn Tấn)/베트남 통신사
 
또럼(Tô Lâm)당서기장과 국가 지도부와 대의원들이 2025년 12월 11일 하노이에서 열린 제15대 국회 제10차 회의 폐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쪼안 두언(Doãn Tấn)/베트남 통신사

지난 80년간 베트남 국회의 발전은 계승과 끊임없는 혁신의 연속 과정으로,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에서 인민의 최고 대표기관이자 최고 국가권력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며 각 혁명 단계의 요구와 과업을 충실히 수행해 왔음을 보여준다./.

  • 기사: 베트남픽토리알 
  • 사진: 베트남통신사
  • 그래픽디자인: 흐엉 타오(Hương Thả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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