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현대 도시의 흐름 속에서도, 한 장의 전통 한지처럼 연약해 보이지만 수천 년의 역사를 품은 가치들이 존재한다.
급변하는 현대 도시의 흐름 속에서도, 한 장의 전통 한지처럼 연약해 보이지만 수천 년의 역사를 품은 가치들이 존재한다. 하노이 40 란옹(Lãn Ông) 유적 공간에서 열린 전시 “도( Dó )에서 비롯되다” 는 단순한 전시 행사를 넘어, 베트남의 서예 문화와 민속예술의 ‘혼(魂)’이라 불렸던 전통 도( Dó ) 종이의 가치를 되새기고 기억을 환기하기 위한 뜻깊은 시도이다.
조 종이 공예 전시 공간이 전통 제작 과정을 체험하려는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 카잉 롱/베트남픽토리알
베트남의 전통 수공예 마을은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탕롱-하노이는 이러한 장인 정신과 문화적 정수가 집약된 중심지로 자리해 왔다. 교외의 공예 마을에서 활동하던 장인들은 민간의 지혜와 창조 정신을 옛 하노이 상업지구인 ‘께쩌(Kẻ Chợ)’로 가져왔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특색 있는 공예 거리 문화를 형성했다. 그 다채로운 문화 풍경 속에서 도( Dó ) 종이 제작 기술은 지식과 시간을 잇는 가교로서 특별한 의미를 지녀왔다.
도( Dó ) 종이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제작되어, 과거 베트남 사회 전반에 걸쳐 필수적인 재료로 사용됐다. 불경과 유교 경전을 인쇄하는 데서부터 한자와 쯔놈(Chữ Nôm) 문자를 기록하는 용도, 그리고 봉건 왕조에서 칙서를 내릴 때 사용하던 귀중한 ‘삭(勅) 용지’ 제작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됐다. 특히 도 종이는 동호(Đông Hồ)와 항쫑(Hàng Trống) 같은 베트남 대표 민속화가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 핵심 기반이자 예술적 토대였다.
관람객들이 조 종이 제작 과정과 대표 수공예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카잉 롱/베트남픽토리알
해설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객들이 조 종이 공예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이해하고 있다. 사진: 카잉 롱/베트남픽토리알
겉보기에는 소박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도( Dó ) 종이는 놀라운 기술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질기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습기를 잘 흡수할 뿐 아니라 오랜 세월에도 쉽게 훼손되지 않는 강한 보존성을 갖추고 있다. 전통 방식에 따라 제대로 제작된 도 종이 한 장은 수백 년이 지나도 먹빛과 그림의 선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어, 예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문화와 역사의 가치를 기록하고 전승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로 자리해 왔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발전은 많은 전통 수공업을 위기로 내몰았으며, 도( Dó ) 종이 제작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값싸고 편리한 산업용 종이가 시장을 장악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도 종이는 점차 일상 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그러나 문화유산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더 이상 바라보지 않을 때 비로소 사라지는 법이다. 도( Dó ) 종이를 단순한 수공예품이 아닌 다양한 문화예술 발전을 떠받쳐 온 물질적 기반으로 인식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이를 되살리려는 ‘부흥의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많은 예술가와 연구자, 젊은 디자이너들이 다시 도 종이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민속화나 서예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래픽 디자인, 설치미술, 현대 창작 공예품 등 다양한 분야에 도 종이를 접목하고 있다. 이는 전통 소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인한 생명력과 새로운 창작 형식에 대한 뛰어난 적응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외국인 관광객이 종이 제작의 기본 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카잉 롱/베트남픽토리알
관람객들이 종이 제작의 기본 과정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사진: 카잉 롱/베트남픽토리알
한약재 거리로 잘 알려진 유서 깊은 40 란옹( Lãn Ông ) 고택 공간에서 도( Dó ) 종이의 존재는 시각과 후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독특한 공감각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은 단순히 종이를 감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베트남 민족사의 흐름을 관통해 온 하나의 ‘붉은 실’과도 같은 문화적 연결고리를 이해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조 종이를 활용한 예술 작품이 문화생활 속 응용 가치를 보여준다. 사진: 카잉 롱/베트남픽토리알
다양한 디자인의 조 종이 수제 노트가 소개되고 있다. 사진: 카잉 롱/베트남픽토리알
도( Dó ) 종이 제작의 가치를 다시 조명하고 되살리는 일은 단순한 문화유산 보존의 의미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는 미래를 향한 신념과 희망을 키워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국의 전통 소재를 존중하고, 문화유산을 창조산업의 자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족 고유의 정체성 또한 가장 강하게 빛을 발하게 된다.
전통 공예 전시와 유적 공간이 결합돼 새로운 문화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진: 카잉 롱/베트남픽토리알
40 란옹( Lãn Ông ) 전시에서는 소박한 흰 도( Dó ) 종이만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 속 다양한 활용 가능성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은은한 빛을 품은 전통 등롱부터 정교한 수공 노트, 현대 회화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재탄생한 도 종이는 베트남 북부 산간지역의 숲에서 자란 원재료가 장인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얼마나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통 공예 체험 공간은 하노이를 찾는 관광객 유치의 새로운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 카잉 롱/베트남픽토리알
“도( Dó )에서 비롯되다” 전시는 전통과 현재를 잇고,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을 공동체로 확산시키는 진정한 문화 사절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냈다. 전시의 고요한 공간을 나서는 순간, 관람객들은 한 가지 믿음을 마음속에 품게 된다. 바로 조상들이 남긴 질기고 단단한 ‘도 종이의 섬유결’을 소중히 여기는 한, 수천 년 이어져 온 베트남 문화의 흐름 또한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기사:쩐 탄 장(Trần Thanh Giang)
사진:부 카잉 롱(Vũ Khánh Long)/베트남 픽토리알